한 곳의 사고가 전체로 번질 때 — 시스템 위험·거래상대방 위험·유동성 위험과 CDS
2009년 3월 6일,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종가는 2007년 10월 5일 고점보다 93.45% 낮았습니다. 우리 가격 데이터로 계산한 값입니다. 그 계좌가 예전 고점을 되찾은 것은 2021년 5월 6일, 저점에서 146.0개월, 약 12.2년 뒤였습니다. 특정 종목 하나가 잘못돼서가 아니라 금융 시스템 자체가 흔들렸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이 숫자가 보여줍니다.
최근 업데이트: 2026-07-23
전염이라는 단어가 금융에 들어온 이유
시스템 위험(Systemic Risk)은 한 기관이나 시장의 실패가 서로 얽힌 연결망을 통해 금융 시스템 전체로 전이되는 위험입니다.
개별 위험은 한 종목, 한 회사의 문제로 끝납니다. 시스템 위험은 전염을 통해 번집니다. A 가 무너지면 A 와 거래하던 B 가 손실을 보고, B 의 부실이 C 로 옮겨가는 식이었습니다.
금융기관들은 서로 돈을 빌려주고, 파생계약을 맺고, 자산을 공유하며 촘촘히 연결돼 있습니다. 이 연결은 평소에는 효율을 높이지만 위기 때는 손실을 빠르게 퍼뜨리는 통로가 됐습니다. 너무 커서 망하게 둘 수 없다는 말이 나온 배경입니다.
연방준비제도는 지금도 금융안정보고서를 정기적으로 내며 시스템 전반의 취약성을 점검하고 있습니다. 개별 기관이 건전한지만 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두 번의 위기가 남긴 결론이었습니다.
1998년, 헤지펀드 하나가 세계를 위협했다
시스템 위험을 세계가 처음 실감한 사례는 1998년 LTCM(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이었습니다.
LTCM 은 노벨상 수상자까지 참여한 헤지펀드였지만 극단적인 레버리지를 썼습니다. 자기자본 약 48억 달러로 1,250억 달러 이상을 차입해 레버리지가 약 25 ~ 30배에 달했고, 파생계약 명목 규모는 1조 달러를 넘었습니다.
1998년 러시아 위기로 베팅이 어긋나자 LTCM 은 붕괴 위기에 몰렸습니다. 문제는 이 펀드가 월가 거의 모든 주요 금융기관과 얽혀 있어, 무질서하게 청산되면 세계 시장이 흔들릴 판이었다는 점입니다.
결국 연준의 주선으로 14개 금융기관이 약 36억 달러를 투입해 질서 있게 정리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는 정확히 짚어야 합니다. 투입된 돈은 연준의 자금이 아니라 민간 은행들의 돈이었고, 연준이 한 일은 자리를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남긴 교훈은 두 가지였습니다. 규모가 크지 않아도 연결이 촘촘하면 시스템 위험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정교한 모형이 극단적 상황에서는 무력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08년, 도미노가 실제로 넘어졌다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 파산은 시스템 위험이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이 된 사건이었습니다.
리먼은 총자산 약 6,390억 달러로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산을 기록했습니다. 문제는 리먼이 전 세계 금융기관과 약 90.6만 건, 명목 약 35조 달러에 달하는 파생거래로 얽혀 있었다는 점입니다.
리먼이 무너지자 그 손실이 상대방으로 번졌고, 다음은 누구냐는 공포가 자금 시장을 얼어붙게 했습니다. 리먼과 직접 거래가 없던 기관들까지 자금 조달이 막히며 유동성 위기에 빠졌습니다. 한 곳의 붕괴가 시스템 전체로 전이된 것입니다.
대응의 규모가 사태의 크기를 말해 줍니다. 미국 회계감사원(GAO)이 2011년에 낸 보고서에 따르면, 연준의 긴급 프로그램들로 나간 대출 잔액은 2008년 말 1조 달러를 넘어 정점을 찍었습니다.
이 경험 이후 각국은 대형 금융기관을 더 촘촘히 규제하고 중앙청산소를 확대하는 등 시스템 위험을 줄이는 장치를 강화했습니다.
거래상대방 위험 — 내가 맞아도 상대가 못 갚으면
리먼 사태의 전달 경로를 한 단계 더 들여다보면 거래상대방 위험(Counterparty Risk)이 나옵니다. 거래의 상대방이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위험입니다.
쉽게 말해 내가 맞아도 상대가 못 갚으면 소용없다는 위험입니다. 파생상품 계약에서 내가 이겨 돈을 받아야 하는데 상대가 파산하면 그 이익을 받지 못합니다.
이 위험은 특히 세 가지 상황에서 큽니다.
첫째, 거래소를 거치지 않는 장외파생 계약입니다. 둘째, 주식을 빌려주고 못 돌려받을 수 있는 대차거래입니다. 셋째, 거래소나 중개기관에 자산을 맡겨둔 경우입니다.
즉 내 자산이나 이익이 남의 신용에 의존하는 모든 순간에 거래상대방 위험이 존재했습니다.
이를 줄이기 위한 장치도 마련돼 있습니다. 중앙청산소(CCP)가 중간에서 결제를 보증하고, 담보와 증거금을 미리 잡아두며, 예금자·투자자 보호제도가 한도 내에서 자산을 보호합니다. 국제결제은행은 장외파생 잔액 통계를 반기마다 집계해 이 시장의 크기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장치들도 만능은 아니었습니다. 2022년 FTX 같은 암호화폐 거래소 파산에서는 고객이 맡긴 자산 자체가 반환되지 않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내 자산을 누구에게 맡기고 누구와 거래하는가라는 상대방의 건전성이 수익률만큼 중요합니다.
유동성 위험 — 팔 수 없으면 수익이 아니다
위기가 번지는 또 하나의 통로는 유동성이었습니다. 유동성은 자산을 얼마나 빠르게, 제값에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가를 뜻하고, 유동성 위험은 그것이 어려워지는 위험입니다.
유동성 위험은 두 얼굴로 나타납니다. 아예 팔리지 않거나, 팔리긴 하지만 제값보다 크게 깎아야 하는 경우입니다. 장부상 평가액이 높아도 실제로 그 값에 팔 수 없다면 그 수익은 종이 위의 숫자일 뿐입니다.
자산은 유동성 스펙트럼 위에 놓여 있습니다. 예금·MMF, 대형 상장주식, 주요국 국채, 대형 ETF 는 원할 때 거의 즉시 팔 수 있어 유동성이 높습니다. 소형주, 회사채, 일부 리츠가 중간이고, 부동산, 비상장 주식, 수집품, 일부 대체투자는 유동성이 낮습니다. 유동성이 낮은 자산일수록 호가 스프레드가 넓어 사고파는 것만으로 손실이 발생합니다.
유동성 위험이 가장 무서운 순간은 위기였습니다. 평소에는 잘 팔리던 자산도 시장이 공포에 빠지면 사겠다는 사람이 한꺼번에 사라졌습니다. 모두가 동시에 팔려고 하면 가격이 폭락하고, 값을 크게 깎아도 매수자를 찾기 어려워집니다. 레버리지를 쓴 투자자는 이때 마진콜에 몰려 헐값에 강제로 팔아야 했고, 그것이 다시 가격을 끌어내리는 악순환이 생겼습니다.
즉 유동성 위험은 레버리지·시스템 위험과 결합해 위기를 증폭시켰습니다. 평소의 유동성과 위기의 유동성은 전혀 다르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높은 수익률을 내세우는 상품일수록 정작 팔고 싶을 때 팔 수 있는지를 먼저 따져야 합니다. 평가상 수익률이 높아도 그 값에 팔 수 없으면 의미가 없고, 위기 때는 환매가 중단되기도 합니다.
CDS와 AIG — 보험처럼 생겼지만 보험이 아니었던 것
신용부도스왑(Credit Default Swap, CDS)은 채권 같은 부채의 신용위험을 다른 쪽으로 넘기는 파생상품입니다. 구조는 보험과 닮았습니다. 보장매입자는 정기적으로 프리미엄을 내고, 보장매도자는 준거기업이 부도 같은 신용사건을 일으키면 손실을 보전해 줍니다.
다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습니다. 보험은 보통 내가 가진 것에만 들 수 있지만, CDS 는 해당 채권을 보유하지 않아도 살 수 있습니다. 즉 특정 기업의 부도에 베팅하는 투기 수단으로도 쓰였습니다. 이 때문에 실제 채권 규모보다 훨씬 많은 CDS 가 시장에 존재할 수 있고, 위험이 눈에 보이지 않게 쌓이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2008년에 그 위험이 터졌습니다. 보험사 AIG 는 담보를 충분히 쌓지 않은 채 주택담보증권에 대한 CDS 를 대규모로 팔았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그 규모는 자료별로 약 4,400억 ~ 5,000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주택시장이 무너지자 부도가 잇따랐고 AIG 는 약속한 보전금을 감당할 수 없게 됐습니다. 연방준비제도의 공식 기록에 따르면 2008년 9월 16일 뉴욕 연준은 AIG 에 최대 850억 달러 규모의 신용공여를 승인했고, 그 대가로 설립된 신탁이 AIG 지분 79.9% 를 받았습니다. 연준과 재무부의 여러 프로그램을 합친 총 지원 규모는 1,820억 달러로 널리 보도됐습니다. 훗날 정부가 지분을 되팔며 최종적으로는 이익을 냈다는 후일담도 있습니다.
CDS 자체는 위험을 옮기는 도구입니다. 그러나 담보 없이 과도하게 팔리면 위험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한곳에 쌓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 이 사건의 교훈이었습니다.
AIG 관련 CDS 규모는 자료별로 차이가 있어 범위로 표기했습니다. 이 글은 CDS 투자나 매매를 권하지 않으며, 개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기관 상품임을 밝힙니다.
우리 데이터로 본 2008년 — 함께 무너진 것과 버틴 것
이 이야기가 계좌에서는 어떻게 보였을까요. SPY 의 고점인 2007년 10월 9일부터 저점인 2009년 3월 9일까지, 우리 데이터로 자산별 구간 수익률을 계산해 봤습니다.
VNQ(미국 부동산 리츠): -69.3% EEM(신흥국 주식): -59.1% SPY(미국 대형주): -55.2% QQQ(나스닥 100): -51.6% XLU(미국 유틸리티): -42.5% AGG(미국 종합채권): +7.4% GLD(금): +23.9% TLT(미국 장기국채): +25.1%
주식 계열은 지역과 섹터를 가리지 않고 함께 무너졌습니다. 위기 국면에서는 개별 자산의 좋고 나쁨과 무관하게 거의 모든 위험자산이 함께 하락하는, 상관관계가 1 에 수렴하는 현상이 실제로 나타납니다.
숫자로도 확인됩니다. 2000년 이후 전 기간 월별 데이터로 SPY 와의 상관계수를 재면 EEM 은 0.74, VNQ 는 0.73 이었는데,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5개월만 잘라 재면 각각 0.89 와 0.82 로 올라갔습니다. 평소에 남아 있던 차이가 위기에서 좁아진 것입니다.
다만 모든 자산이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같은 35개월 구간에서 TLT 의 상관계수는 -0.06, GLD 는 0.09 로 오히려 SPY 와 무관하게 움직였습니다. 미국 국채가 진짜 위기에서 상승하는 드문 자산으로 꼽히는 이유입니다. 상관관계가 1 로 수렴한다는 말은 위험자산끼리의 이야기이지 모든 자산의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앞머리의 뱅크 오브 아메리카로 돌아가면, 우리 데이터에서 이 종목의 최대낙폭은 -93.5% 였고 고점 아래에 연속으로 머문 최장 구간은 3,418거래일, 한 해의 거래일 수(약 252일)로 나누면 약 13.6년입니다. 본전을 되찾으려면 저점에서 +1,425.7% 가 필요했습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대비
시스템 위험은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거시적 위험입니다. 완전히 피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개념을 알면 위기 때 시장이 왜 그렇게 급하고 넓게 무너지는지 이해할 수 있고, 그 이해가 견디는 힘이 됩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대비는 세 가지 정도입니다.
첫째, 과도한 레버리지를 피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본 마진콜 악순환에 휘말리면 버티는 선택지 자체가 사라집니다. 둘째, 위기에도 버틸 수 있는 현금·안전자산 비중을 두는 것입니다. 2008년 구간에서 국채와 금이 어떻게 움직였는지가 그 근거입니다. 셋째, 최대 낙폭과 손실 기간을 미리 각오하는 것입니다.
이 사이트가 계산 결과에서 낙폭과 회복 기간을 항상 함께 보여주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위기 계산기에서 특정 위기 구간을 골라 자산별로 얼마나 빠졌는지, 되돌아오는 데 얼마가 걸렸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글은 어떤 자산의 매수나 매도를 권하지 않으며, 과거의 위기 패턴이 다음 위기에서 반복된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위에 인용한 수치는 모두 특정 구간의 과거 실적이고, 배당을 재투자한 총수익 기준으로 계산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시스템 위험은 개인이 피할 수 있나요?
완전히 피할 수는 없습니다. 시장 전체를 덮치는 거시적 위험이라 위기 때는 대부분의 위험자산이 함께 하락합니다. 다만 과도한 레버리지를 피하고, 현금·안전자산 비중을 두고, 최대 낙폭을 미리 각오하면 충격을 견디는 힘을 키울 수 있습니다.
Q. 너무 커서 망하게 둘 수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특정 금융기관이 너무 크고 여러 곳과 얽혀 있어 그곳이 무너지면 시스템 전체가 위험해지는 상황을 뜻합니다. 그래서 정부와 중앙은행이 개입해 질서 있게 정리하거나 구제하기도 합니다. 다만 위험을 감수한 곳을 공적 자금으로 구한다는 도덕적 해이 논란도 함께 낳습니다.
Q. 거래상대방 위험과 신용 위험은 같은 건가요?
겹치지만 결이 다릅니다. 신용 위험은 주로 돈을 빌려준 대상이 못 갚을 위험을 말하고, 거래상대방 위험은 거래나 계약의 상대방이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위험을 넓게 가리킵니다. 이익이나 자산이 상대의 신용에 의존하는 모든 관계에서 나타납니다.
Q. 거래소에 자산을 맡기면 안전한가요?
제도권 거래소는 여러 보호장치를 두지만 절대 안전은 없습니다. 특히 규제가 약한 일부 암호화폐 거래소에서는 맡긴 자산이 반환되지 않는 일이 있었습니다. 자산을 맡기는 기관의 건전성, 규제 수준, 자산 분리 보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유동성이 낮은 자산은 무조건 피해야 하나요?
무조건은 아닙니다. 부동산이나 사모투자처럼 유동성이 낮은 자산도 나름의 역할이 있습니다. 다만 팔고 싶을 때 바로 못 판다는 점, 급전이 필요할 때 헐값에 처분해야 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Q. CDS는 개인도 사고팔 수 있나요?
사실상 어렵습니다. CDS는 주로 은행·보험사·헤지펀드 등 기관 사이에서 거래되는 장외 파생상품입니다. 개인은 직접 접근하기 어렵고, 이 글은 교육 목적의 개념 설명입니다.
참고자료
- Regulatory Reform: American International Group (AIG) — Board of Governors of the Federal Reserve System
- Federal Reserve System: Opportunities Exist to Strengthen Policies and Processes for Managing Emergency Assistance (GAO-11-696) — U.S. Government Accountability Office
- OTC derivatives statistics —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 Financial Stability Report — Board of Governors of the Federal Reserve Syst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