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의 신용위험 — 신용등급·신용 스프레드·하이일드
2008년 11월 20일, 미국 하이일드 회사채 ETF를 담아 둔 계좌는 1년 두 달 전 고점 대비 -34.25%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국채도 아니고 주식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고 여겨지던 자산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그날 무엇이 무너졌는지를 이해하려면 '신용'이라는 한 단어의 값이 어떻게 매겨지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최근 업데이트: 2026-07-20
신용 스프레드 = 회사채 금리 − 국채 금리
신용 스프레드(credit spread)는 이름은 어렵지만 뜻은 단순합니다. 같은 만기의 회사채 금리에서 국채 금리를 뺀 값입니다.
3년 만기 회사채 금리가 6%인데 같은 3년 만기 국채 금리가 3%라면 신용 스프레드는 3%포인트, 금융에서 쓰는 단위로는 300bp입니다. 1%포인트가 100bp입니다.
왜 국채와 비교할까요. 국가는 세금을 걷을 수 있고 웬만해선 망하지 않으니, 국채는 떼일 걱정이 거의 없는 기준선으로 봅니다. 그래서 회사가 국가보다 얼마나 더 얹어줘야 하는지가 곧 그 회사의 위험값이 됩니다.
비교할 때는 만기를 맞춰야 합니다. 3년짜리는 3년 국채, 10년짜리는 10년 국채와 맞춰서 빼야 순수한 신용 위험만 남습니다. 만기가 다른 둘을 빼면 금리 기간 구조의 차이가 섞여 들어갑니다.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일수록 스프레드가 큽니다. 안전하다고 평가받는 투자등급 회사채는 평상시 대략 50~150bp 수준으로, 역사적으로 보면 평균 130bp 안팎에서 움직여 왔습니다. 반면 부도 위험이 큰 하이일드 채권은 이보다 훨씬 크고 변동도 심합니다.
위 50~150bp, 평균 130bp는 미국 회사채 지수 기준의 대략적인 범위입니다. 시기·지수·측정 방식에 따라 달라지므로 절대 기준이 아니라 감을 잡는 참고치로 봐야 합니다.
등급표에서 가장 중요한 한 칸
스프레드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신용등급입니다. 신용등급(credit rating)은 신용평가사가 발행자의 상환 능력을 평가해 알파벳 기호로 매긴 성적표입니다. 세계적으로 무디스(Moody's), S&P 글로벌, 피치(Fitch) 세 곳이 대표적입니다.
표기법은 두 갈래입니다. 무디스는 가장 높은 Aaa부터 Aa, A, Baa, Ba, B, Caa, Ca를 거쳐 사실상 부도 상태인 C까지 내려가고, 세부 구분에 숫자 1·2·3을 붙입니다. S&P와 피치는 AAA부터 AA, A, BBB, BB, B, CCC, CC, C를 거쳐 부도 상태인 D까지 내려가며, 세부 구분에 +와 -를 붙입니다. A가 많이 붙을수록 안전, 뒤로 갈수록 위험이라고 읽으면 됩니다.
이 표에서 가장 결정적인 선은 딱 한 군데입니다. 투자등급(investment grade)은 위에서부터 BBB-(무디스 Baa3)까지이고, 그 바로 아래인 BB+(무디스 Ba1)부터가 투기등급이자 하이일드입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용어 정의도 같은 선을 긋습니다. 하이일드 채권을 "bonds that are believed to have a higher risk of default and receive low ratings by credit rating agencies, namely bonds rated Ba or below (by Moody's) or BB or below (by S&P and Fitch)"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 한 칸이 왜 결정적인지는 부도율이 말해 줍니다. 무디스의 장기 집계(1970~2006년, issuer-weighted 기준)에서 10년 누적 부도율은 투자등급 최하단인 Baa가 약 4.6%였던 반면, 한 칸 아래 Ba는 약 19%, 그 아래 B는 약 43%였습니다. 등급 한 칸 차이가 위험을 네 배, 아홉 배로 키우는 것입니다.
등급 경계가 중요한 이유는 하나 더 있습니다. 연기금·보험사 등은 규정상 투자등급만 담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 이 선 아래로 강등되면 규정에 따른 대량 매도가 나오기도 합니다.
부도율 수치는 집계 기관과 기간에 따라 다릅니다. 위 값은 무디스의 1970~2006년 issuer-weighted 10년 누적 기준입니다.
등급을 맹신하면 안 되는 이유
신용등급은 유용한 출발점이지만 완벽한 예언은 아닙니다.
첫째, 등급은 대체로 채권을 발행하는 쪽이 평가사에 비용을 내고 받습니다. 이 구조 때문에 이해상충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둘째, 등급은 사후에 바뀝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최고 등급을 받았던 서브프라임 관련 상품들이 대거 부실화되며 신용평가의 한계가 크게 드러났습니다.
셋째, 세 평가사의 등급이 한 단계 정도 갈리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이럴 때는 더 보수적인 등급을 참고하거나 세 곳을 함께 보는 편이 안전합니다.
결국 등급은 절대 안전을 보증하는 서류가 아니라 현재 시점의 위험을 가늠하는 참고 지표입니다. 높은 등급도 강등될 수 있고, 부도가 없더라도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이 떨어져 중간에 팔 때 손실이 날 수 있습니다.
위기 때 스프레드가 어디까지 벌어졌나
신용 스프레드는 시장의 공포와 안심을 재는 체온계입니다. 스프레드가 벌어지면 투자자들이 위험을 두려워한다는 신호이고, 좁아지면 위험을 편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주가만 보면 놓치기 쉬운 긴장감을 채권 시장이 먼저 드러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 하이일드 채권 스프레드로 두 위기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12월 중순 스프레드가 대략 20%포인트, 곧 2000bp 안팎까지 폭발했습니다. 평소 3~5%포인트대에서 움직이던 숫자가 위기 정점에서 그만큼 치솟은 것입니다. 집계 방식에 따라 최고 22% 부근으로 보고되기도 합니다. 회복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2020년 코로나 충격 때는 3월 하순 스프레드가 대략 11%포인트, 약 1100bp까지 급등했습니다. 2008년보다는 낮았지만 속도는 훨씬 빨랐고, 중앙은행이 회사채까지 사들이는 이례적 개입에 나서면서 몇 달 만에 빠르게 진정됐습니다.
두 위기 모두 스프레드가 벌어질 때가 가장 무서운 순간이자 동시에 위험을 가장 크게 보상하던 순간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만 그 보상을 받으려면 그때 팔지 않고 버텨야 했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실측 — 하이일드는 위기 때 채권이 아니라 주식처럼 움직였습니다
스프레드는 금리 이야기라 체감이 어렵습니다. 그 스프레드가 계좌 잔고로 번역되면 어떤 크기였는지 우리 가격 데이터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하이일드 회사채 ETF인 HYG는 데이터가 시작되는 2007년 4월 11일부터 2026년 8월 31일까지 4,878거래일을 훑으면, 전체 기간 최대 낙폭이 -34.25%였고, 본전을 되찾으려면 +52.1%가 필요했습니다. 고점은 2007년 9월 19일, 저점은 2008년 11월 20일입니다. 이전 고점을 다시 넘은 날은 저점에서 12.4개월이 지난 2009년 12월 2일이었고, 고점 아래에 머문 최장 구간은 555거래일(약 2.2년)이었습니다. 또 다른 하이일드 ETF인 JNK는 같은 위기에서 최대 낙폭 -38.48%를 기록했고, 본전까지 필요한 상승은 +62.6%였습니다.
그에 비해 투자등급 회사채 ETF인 LQD의 전체 기간 최대 낙폭은 -24.96%였고, 본전까지 필요한 상승은 +33.3%였습니다. 다만 이 낙폭은 금융위기가 아니라 금리가 급등한 2021년 9월 22일 고점에서 2022년 10월 20일 저점 사이에 발생했고, 2026년 8월 31일까지도 그 고점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고점 아래에 머문 최장 구간은 1,238거래일(약 4.9년)입니다. 신용위험이 낮은 채권은 신용 사건보다 금리 사건에서 더 크게 흔들린다는 점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2008년 한 해만 잘라 보면 자산별 성격이 더 선명해집니다. 배당 재투자를 반영한 조정 종가 기준으로 그해 HYG는 -17.55%, LQD는 +2.42%, 중기 국채 ETF인 IEF는 +17.92%, S&P 500 ETF인 SPY는 -36.79%였습니다. 안전자산으로 돈이 몰려 국채가 오르는 동안 하이일드는 주식과 같은 방향으로 내려갔습니다.
'하이일드는 채권이니 주식보다 안전하다'는 통념이 정확히 이 지점에서 깨집니다. 평소에는 이자를 주며 잔잔하지만, 위기에는 주식 쪽으로 붙습니다. 높은 이자는 공짜가 아니라 이 성질에 대한 대가입니다.
수치의 출처와 한계
본문의 HYG·JNK·LQD·IEF·SPY 수치는 이 사이트가 보관한 일별 조정 종가를 직접 읽어 계산했습니다. 배당이 재투자된 총수익 기준이며 달러 표시입니다. 원화로 환산하면 환율 변동이 더해지고, 보수·세금·거래비용은 반영돼 있지 않습니다.
반면 스프레드 수치와 부도율은 우리가 직접 계산할 수 없는 항목이라 외부 집계를 옮긴 값입니다. 지수와 측정 방식에 따라 소수점 아래가 달라지므로 대략적인 범위로 읽어야 합니다.
이 글은 하이일드나 투자등급 회사채의 매수·매도를 권하지 않으며, 스프레드의 방향도 예측하지 않습니다. 스프레드가 벌어질 때가 보상이 큰 순간이었다는 역사적 서술은 그 순간에 사라는 뜻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 시점에는 낙폭이 이미 30%를 넘어 있었고, 회복까지 1년 넘게 걸렸습니다. 같은 조건을 직접 넣어 확인하려면 아래 계산기와 위기 페이지를 이용하면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신용 스프레드가 크면 무조건 나쁜 건가요?
좋다·나쁘다로 나누기보다 '위험이 크다'는 신호로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스프레드가 크다는 것은 부도 위험이 크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그 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로 더 높은 이자를 준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Q. 하이일드는 이자가 높으니 장기로 묻어두면 이득 아닌가요?
그 이자는 부도로 잃을 위험에 대한 보상입니다. 우리 데이터로 계산하면 하이일드 ETF인 HYG는 2007년 9월 고점에서 2008년 11월 저점까지 -34.25%까지 빠졌고, 본전을 되찾으려면 +52.1%가 필요했습니다. 분산된 ETF라도 하락장에서 이 정도 낙폭을 겪을 수 있습니다.
Q. 하이일드 채권은 주식만큼 위험한가요?
성격이 다르지만 위기에는 비슷하게 움직입니다. 2008년 한 해 HYG는 -17.55%, SPY는 -36.79%였고, 같은 해 국채 ETF인 IEF는 +17.92%였습니다. 위기에 국채가 오를 때 하이일드는 주식 쪽으로 붙었습니다.
Q. AAA 등급이면 원금을 절대 잃지 않나요?
가장 높은 등급으로 역사적 부도율이 매우 낮지만 '절대'는 아닙니다. 등급은 시간이 지나며 강등될 수 있고, 부도가 없더라도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이 떨어져 중간에 팔 때 손실이 날 수 있습니다.
Q. 개인 투자자가 신용 스프레드를 왜 알아야 하나요?
스프레드가 급하게 벌어지면 채권 시장이 위기를 먼저 감지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주가만 볼 때 놓치기 쉬운 시장의 긴장감을 읽는 보조 지표가 됩니다. 다만 매매 신호가 아니라 분위기를 이해하는 참고 도구로 쓰는 것이 안전합니다.
참고자료
- High-yield Bond (or Junk Bond) — Glossary — U.S.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Investor.gov)
- Bonds (bond rating·investment grade·high yield 정의) — FINRA
- Bonds — FAQs (credit risk) — U.S.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Investor.g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