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배수로 기업 가치를 재는 법 — PER·EPS·PBR·PSR·EV/EBITDA·PEG
PER이 낮으면 싸고 좋은 주식이라는 말은 아마 가장 널리 퍼진 오해일 것입니다. 현실에서 낮은 PER은 저평가의 증거일 수도, 시장이 그 회사의 이익이 곧 줄어들 것이라 보고 있다는 경고일 수도 있습니다. 같은 숫자가 정반대 두 가지를 뜻할 수 있다면, 배수는 답이 아니라 질문의 출발점입니다.
최근 업데이트: 2026-07-22
PER — 이익 1원에 시장이 얼마를 내는가
PER(Price-to-Earnings Ratio, 주가수익비율)은 주가가 그 회사의 이익에 비해 몇 배 수준인지를 봅니다.
PER = 주가 ÷ 주당순이익(EPS)
회사 전체로 보면 시가총액 ÷ 당기순이익과 같습니다. EPS가 1,000원인데 주가가 15,000원이면 PER은 15배입니다. 지금 이익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주가만큼 벌어들이는 데 대략 15년이 걸린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고, 뒤집으면 시장이 이익 1원에 15원을 지불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높은 PER은 시장이 그 회사의 미래 성장을 크게 기대할 때 나타납니다. 빠르게 크는 기업은 PER이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실적 대비 과열됐을 때도 같은 모양이 나옵니다. 반면 낮은 PER은 저평가일 수도 있지만, 시장이 그 회사의 미래를 어둡게 보거나 이익이 곧 줄 것이라 예상해서 낮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밸류 트랩, 가치 함정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PER은 절대 숫자가 아니라 비교로 읽어야 합니다. 같은 업종의 다른 회사와, 그 회사의 과거 PER 흐름과, 시장 전체 평균과 견줄 때 비로소 의미가 생깁니다. 성장이 빠른 업종은 20~30배도 흔하고 성숙한 업종은 10배 안팎인 경우가 많으니, 몇 배가 적정인지를 외우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적자 회사는 분모가 마이너스라 PER 자체가 계산되지 않거나 의미가 없어집니다. 이럴 때 PSR 같은 다른 배수를 함께 봅니다.
EPS — 분모를 흔들면 배수도 흔들린다
PER의 재료인 EPS(Earnings Per Share, 주당순이익)는 당기순이익을 주식 수로 나눈 값입니다.
기본 EPS = 보통주 귀속 당기순이익 ÷ 가중평균 유통주식수
여기서 가중평균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회사가 1년 중간에 유상증자로 주식을 더 찍거나 자사주를 사서 없애면 주식 수가 바뀝니다. 그 변동을 기간에 맞춰 평균 낸 값을 써야 왜곡이 줄어듭니다.
한 걸음 더 나가면 희석 EPS가 있습니다. 임직원 스톡옵션이나 전환사채처럼 지금은 주식이 아니지만 나중에 주식으로 바뀔 수 있는 것들까지 전부 주식이 됐다고 가정해 계산합니다. 분모가 커지므로 희석 EPS는 언제나 기본 EPS보다 작거나 같습니다. 절대 커지지 않습니다. 둘의 차이가 크다면 잠재 주식이 많다는 뜻이고, 나중에 내 지분 가치가 묽어질 여지가 크다는 신호입니다.
EPS가 올랐다는 소식을 볼 때는 원인을 따져야 합니다. 이익이 실제로 늘어 오른 것과, 자사주 매입으로 분모가 줄어 오른 것은 성격이 다릅니다. 게다가 EPS는 회계상 이익 기준이라 자산 매각 같은 일회성 항목에 흔들립니다. 한 분기가 아니라 여러 해의 흐름으로 보고 현금 창출력과 함께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PBR — 장부에 적힌 재산과 비교하기
PBR(Price-to-Book Ratio, 주가순자산비율)은 주가를 회사의 순자산과 비교합니다.
PBR = 주가 ÷ 주당순자산(BPS)
회사 전체로는 시가총액 ÷ 자기자본과 같고, 여기서 순자산은 재무상태표의 자산에서 부채를 뺀 값입니다. 기준점은 1배입니다. 1이면 주가가 장부상 순자산과 같은 수준이고, 1보다 크면 시장이 순자산보다 비싸게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며, 1보다 작으면 이론상 청산가치보다 싸게 거래된다는 뜻입니다.
다만 싸 보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으로 손실이 나서 순자산이 줄어들 것이라 예상되면 PBR은 낮게 유지됩니다. 장부가치 자체의 한계도 있습니다. 브랜드·기술·인재 같은 무형의 가치는 장부에 잘 잡히지 않아 IT·바이오 기업은 PBR이 원래 높게 나옵니다. 그에 비해 공장·부동산이 많은 회사는 낮게 나오는 경향이 있습니다.
PBR은 PER·ROE와 함께 볼 때 힘이 커집니다. 대략 PBR ≈ PER × ROE 관계가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순자산으로 이익을 잘 내는 회사일수록 높은 PBR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PBR도 낮고 ROE도 낮다면 그냥 돈을 잘 못 버는 회사일 수 있고, PBR은 낮은데 ROE가 꾸준히 높다면 한 번 더 들여다볼 만한 신호입니다. 물론 이것도 판단의 출발점이지 매수 신호가 아닙니다.
PSR과 EV/EBITDA — PER이 통하지 않을 때
이익이 마이너스면 PER은 계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직 이익을 못 내는 성장 기업을 볼 때는 매출로 재는 PSR(Price-to-Sales Ratio, 주가매출비율)을 씁니다.
PSR = 시가총액 ÷ 연간 매출
매출은 거의 항상 플러스라 몸값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반면 결정적 약점이 있습니다. 수익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합니다. 매출이 같아도 한 회사는 알짜 이익을 남기고 다른 회사는 팔수록 손해를 볼 수 있는데, PSR은 이 둘을 똑같이 취급합니다. 그래서 PSR은 반드시 이익률·매출 성장률과 함께, 그리고 같은 업종 안에서 봐야 합니다.
또 다른 보완 배수가 EV/EBITDA입니다. 회사를 통째로 인수한다면 주식값만 내는 것이 아니라 그 회사의 빚도 떠안아야 한다는 관점에서 출발합니다.
EV(기업가치) = 시가총액 + 총부채 − 현금성자산 EV/EBITDA = EV ÷ EBITDA
빚은 떠안아야 하니 더하고 회사가 가진 현금은 인수 후 바로 쓸 수 있으니 뺍니다. EBITDA는 이자·세금·감가상각비·무형자산상각비를 빼기 전 이익, 즉 본업의 대략적인 현금 창출력입니다. 이 배수는 자본구조의 차이와 감가상각 정책의 차이를 걷어내므로, 빚 규모가 다른 경쟁사끼리나 회계 방식이 다른 국가의 기업끼리 비교할 때 PER보다 공정한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EBITDA는 감가상각을 더해 되돌려 놓기 때문에, 설비 투자가 큰 제조·통신·항공에서는 실제 필요한 재투자를 가려 버립니다. EBITDA가 크다고 진짜 남는 현금이 큰 것은 아닙니다.
PSR은 업종별 편차가 매우 큽니다. 이익률이 높은 소프트웨어는 높고, 박리다매인 유통·건설은 낮게 나오는 것이 정상입니다.
PEG — 성장률로 나눈 배수, 그리고 추정치라는 약점
PER 30배는 무조건 비싼가. 그 회사가 매년 이익을 30%씩 키우고 있다면 답이 달라집니다. 이 고민을 숫자로 옮긴 것이 PEG입니다.
PEG = PER ÷ 연간 이익성장률(%)
PER이 20배인데 이익이 매년 20%씩 성장한다면 PEG는 1입니다. 펀드매니저 피터 린치가 대중화한 개념으로, 적정한 회사라면 PER이 성장률과 비슷해야 한다는 발상입니다. PEG가 1 근처면 성장 대비 적정, 1보다 낮으면 성장에 비해 PER이 낮아 상대적으로 매력적이라 보는 견해가 많고, 1보다 높으면 성장을 감안해도 부담스럽다고 봅니다. PER 40배도 성장률이 40%면 PEG는 1입니다.
다만 이 1이라는 기준은 절대 법칙이 아니라 경험칙입니다. 금리 환경이나 업종에 따라 적정 PEG는 달라집니다.
그리고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습니다. 분모의 이익성장률이 대부분 미래 추정치라는 점입니다. 미래 성장률은 추정하는 사람마다 다르고 실제로는 빗나가기 일쑤인데, 이 값을 조금만 바꿔도 PEG가 크게 흔들립니다. 보통 향후 3~5년의 예상 연평균 이익성장률을 쓰지만 과거 성장률을 쓰기도 하고 제공처마다 기준이 다릅니다. PEG를 볼 때 어떤 성장률로 계산했는지 확인해야 비교가 공정해지는 이유입니다.
높은 배수에 사면 무엇이 달라지나 — 우리 데이터로 본 시간
배수 이야기에서 가장 자주 빠지는 것이 시간입니다. 비싸게 샀을 때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는가는 배수 자체가 알려 주지 않습니다. 우리 사이트가 보유한 일별 가격 데이터로 계산하면 그 시간의 길이가 드러납니다.
나스닥100을 따르는 QQQ는 2000년 3월 27일 고점에서 2002년 10월 9일 저점까지 -82.96% 하락했습니다. 본전으로 돌아오려면 +487.0%가 필요했고, 실제로 이전 고점을 다시 넘은 날은 2015년 2월 20일로 저점에서 148.4개월이 지난 뒤였습니다. 고점 아래에 머문 기간은 최장 3,747거래일입니다.
개별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최대 낙폭 -69.4%를 기록했고(1999년 12월 27일 고점 → 2009년 3월 9일 저점), 이전 고점을 회복한 것은 2014년 7월 16일이었습니다. 2000년 1월 3일부터 2016년 12월 30일까지 17년 동안의 배당을 반영한 조정 종가 기준 총수익은 +57.0%, 연평균으로는 2.69%였습니다. 회사는 그 사이에도 이익을 냈고 사업은 성장했습니다. 달라진 것은 시작한 가격의 배수였습니다.
배수는 미래를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싸게 시작하면 같은 사업 성과로도 회수에 훨씬 긴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은 데이터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 글은 개념 설명이지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 권유가 아닙니다.
위 수치는 이 사이트가 보유한 일별 종가 데이터로 직접 계산한 값입니다(집계 종료일 2026년 8월 31일). 배당이 반영된 조정 종가 기준이며 환율은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PER은 몇 배가 적정한가요?
정답 숫자는 없습니다. 업종·성장성·금리 환경에 따라 적정 수준이 크게 달라집니다. 성장이 빠른 업종은 20~30배도 흔하고 성숙한 업종은 10배 안팎인 경우가 많습니다. 몇 배가 적정인지 외우기보다 같은 업종·과거와 비교하는 습관이 훨씬 유용합니다.
Q. 예상 PER과 실적 PER은 뭐가 다른가요?
실적(후행) PER은 이미 발표된 지난 이익으로, 예상(선행) PER은 앞으로 예상되는 이익으로 계산합니다. 예상 PER은 추정치라 전망이 빗나가면 함께 틀어집니다. 어느 기준으로 계산했는지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Q. 기본 EPS와 희석 EPS 중 뭘 봐야 하나요?
보수적으로 판단하려면 희석 EPS를 권합니다. 잠재 주식까지 감안한 더 냉정한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스톡옵션·전환사채가 많은 성장 기업은 둘의 차이가 커서 희석 기준이 더 현실적입니다.
Q. PBR이 1배 아래면 사도 되나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PBR이 낮은 데는 시장이 미래를 안 좋게 보는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싸다가 아니라 왜 싼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이 글은 개념 설명이지 특정 종목 추천이 아닙니다.
Q. EV/EBITDA가 PER보다 항상 나은가요?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빚 규모가 다른 회사를 비교하거나 감가상각 부담이 큰 업종을 볼 때는 EV/EBITDA가 유리합니다. 반대로 감가상각·이자가 실제로 중요한 위험인데 EBITDA가 그것을 가려 버리는 경우에는 오히려 오해를 줍니다.
Q. PEG가 낮으면 무조건 좋은 주식인가요?
아닙니다. PEG가 낮게 나오는 것은 미래 성장률을 높게 추정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 추정이 빗나가면 PEG의 매력도 사라집니다. 또 성장의 질, 예컨대 빚으로 만든 성장인지 여부는 PEG가 보지 못합니다.
참고자료
- Beginners' Guide to Financial Statements — U.S.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 Online Data — U.S. Stock Markets 1871–Present (price, earnings, CAPE) — Robert J. Shiller, Yale University
- Equity Risk Premiums (ERP): Determinants, Estimation and Implications — Aswath Damodaran, NYU Ste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