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법칙 — 은퇴 자산에서 매년 얼마를 빼 쓸 것인가
모아둔 돈에서 매년 얼마를 빼 쓰면 죽을 때까지 마르지 않을까요? 이 하나의 질문에 하나의 숫자로 답하려 한 시도가 4% 법칙입니다. 규칙은 단순합니다. 그 숫자가 무엇을 견뎠고 무엇을 견디지 못했는지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최근 업데이트: 2026-07-20
4%는 수익률이 아니라 인출률입니다
4% 법칙의 규칙은 두 줄입니다. 은퇴 첫해에 자산의 4%를 생활비로 꺼냅니다. 그다음부터는 그 금액을 물가상승률만큼만 올려 씁니다.
예를 들어 은퇴 자산이 10억 원이라면 첫해에 4,000만 원을 씁니다. 물가가 3% 올랐다면 이듬해에는 4,120만 원입니다. 자산의 4%를 매년 다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첫해 금액을 기준선으로 삼아 물가만 따라 올린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이 차이가 결과를 가릅니다. 매년 남은 자산의 4%를 다시 계산하는 방식이라면 생활비가 시장 등락을 그대로 따라 출렁이지만, 자산이 완전히 마를 일은 거의 없습니다. 4% 법칙은 반대입니다. 생활비를 지켜 주는 대신, 시장이 무너진 해에도 정해진 금액을 그대로 꺼내 갑니다. 자산이 줄어드는 해에 인출 비중은 오히려 커집니다.
4%는 기대수익률이 아닙니다. 이 숫자를 수익률로 오해하면 '연 4%만 벌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전혀 다른 계산이 됩니다.
숫자의 출발점 — 벤겐의 1994년 SAFEMAX
출발점은 트리니티 연구가 아니라 한 명의 재무설계사입니다. 미국의 William Bengen은 1994년 10월 Journal of Financial Planning에 'Determining Withdrawal Rates Using Historical Data'를 실었습니다. 주식과 채권을 절반씩 담고, 30년을 버티며, 첫해에 정한 인출액을 이후 매년 물가에 맞춰 조정하는 조건이었습니다.
그가 찾은 값이 SAFEMAX입니다. 가장 가혹했던 시작 연도조차 30년을 버틴 최대 인출률이라는 뜻입니다. 50 대 50 포트폴리오에서 그 값은 약 4.15%였고, 실무에서 쓰기 쉽게 4%로 반올림한 것이 오늘의 4% 법칙입니다.
가장 가혹했던 시작 연도가 언제였는지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이 사이트의 원래 글은 1966년 무렵 은퇴한 사람을 들었고, 위키백과의 William Bengen 항목은 1968년 시장 고점에서 은퇴한 사람을 듭니다. 어느 쪽을 따르든 1970년대의 주가 약세와 두 자릿수 물가를 정면으로 맞은 코호트라는 점은 같습니다. 두 표기를 지우지 않고 나란히 둡니다. 중요한 것은 4%가 평균이 아니라 최악의 코호트가 겨우 버틴 하한선이라는 사실입니다.
벤겐 본인은 이후 이 숫자를 올렸습니다. 소형주 등을 넣어 자산을 더 다변화하자 SAFEMAX는 2006년 무렵 4.5%로 올라갔고, 최근 연구에서는 4.7%를 기본값으로 제시했습니다. 위키백과는 이 4.5%를 세금이 붙지 않는 계좌 기준으로, 과세 계좌 기준은 4.1%로 나눠 적습니다. 같은 항목에서 벤겐은 평균적인 안전인출률은 7%에 가까웠고 어떤 시기에는 13%까지도 가능했다고 말합니다. 상향의 이유가 '앞으로 시장이 더 좋을 것'이라는 낙관이 아니라 대부분 포트폴리오 다변화였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합니다.
출처: 위키백과 'William Bengen', 위키백과 'Retirement spend-down'. 원 논문은 1994년 10월 Journal of Financial Planning 게재.
트리니티 연구가 확인한 것, 확인하지 않은 것
1998년, 미국 트리니티 대학교의 Philip Cooley·Carl Hubbard·Daniel Walz 세 사람이 이 결론을 더 넓은 자산 배분에서 검증했습니다. 위키백과의 Trinity study 항목은 게재처를 AAII Journal 10권 3호 16~21쪽으로, 데이터 구간을 1925년부터 1995년까지로 적습니다. 이 사이트의 원래 글은 1926년부터로 적었습니다. 한 해 차이지만 어느 쪽도 지우지 않습니다. 표기가 갈릴 뿐, 20세기 미국 시장 70년치라는 성격은 같습니다.
이들은 3%부터 12%까지의 인출률과, 주식 100%부터 채권 100%까지의 배분을 조합해 30년 성공확률을 셌습니다. 널리 인용되는 수치로 주식·채권 50 대 50 조합은 약 95%, 주식 100% 조합은 약 98%였습니다. 인출률을 5%로 올리면 성공률은 대략 68%, 6%로 올리면 대략 43%까지 떨어졌습니다. 조금 더 여유롭게 쓰겠다는 선택이 실패 확률을 몇 배로 키운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성공'의 정의를 봐야 합니다. 30년이 끝나는 날 잔액이 0보다 크면 성공입니다. 1원이 남아도 성공입니다. 그래서 성공확률 95%라는 숫자 안에는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은 사례가 섞여 있습니다. 확률은 결과의 분포를 하나로 뭉갠 값이고, 그 안에 개인이 실제로 견뎌야 할 낙폭과 손실 기간은 들어 있지 않습니다.
위키백과 Trinity study 항목 본문은 저자들의 단서를 함께 인용합니다 — 인출률 선택은 계약이 아니라 계획의 문제이며, 중간에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데이터로 4% 인출을 실제로 돌려보면
일반론은 검색하면 나옵니다. 검색해도 안 나오는 것은 우리 가격 데이터로 직접 돌려 본 결과입니다.
우리 데이터의 SPY(S&P 500을 담는 미국 상장 ETF, 배당 재투자가 반영된 종가)로 계산하면 1993년 1월 29일부터 2026년 8월 31일까지 전체 기간 최대낙폭은 -55.19%입니다. 2007년 10월 9일 고점에서 2009년 3월 9일 저점까지의 값입니다. 저점에서 본전까지 되돌아오는 데 41.3개월이 걸렸고, 고점 아래에 머문 가장 긴 구간은 1,656거래일, 약 6.6년입니다.
이 자산에 100을 넣고 첫해에 4를 꺼낸 뒤, 매년 우리 데이터의 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만큼 인출액을 올리면 어떻게 될까요. 시작 날짜만 바꿔 세 번 돌렸습니다. 2000년 3월 27일에 시작한 경우 10년 뒤 잔액은 38.9, 15년 뒤에도 37.3에 머물렀고 25년차인 2025년 3월에 잔액이 0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30년을 못 채운 것입니다. 2007년 10월 9일에 시작한 경우 15년 뒤 잔액은 146.6이었습니다. 2009년 3월 9일에 시작한 경우 15년 뒤 잔액은 813.7이었습니다.
같은 규칙, 같은 자산, 같은 물가 조정입니다. 다른 것은 시작 날짜 하나뿐입니다. 4% 법칙이 '30년을 버틴다'가 아니라 '대부분의 시작 연도에서 버텼다'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배분을 섞으면 흔들림은 줄어듭니다. 같은 데이터로 월말 리밸런싱을 가정해 2003년 9월 30일부터 2026년 8월 31일까지 계산하면, 주식 100·채권 0 조합의 최대낙폭은 -55.19%, 주식 70·채권 30 조합은 -40.91%, 주식 50·채권 50 조합은 -29.46%였습니다. 대신 연평균 수익률은 각각 11.26%·9.04%·7.43%로 낮아집니다. 낙폭을 줄인 대가는 수익입니다. 공짜는 없습니다.
시뮬레이션 조건: 인출은 연 1회 기말, 세금·매매 수수료·보수·환율은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달러 자산의 수익률에 한국 물가 상승률로 인출액을 올린 계산이므로 한국 거주자의 실제 결과와는 다릅니다. 채권은 AGG(미국 종합채권 ETF)를 썼습니다.
고정 인출의 약점과 가드레일
고정 4% 규칙은 시장 상황을 전혀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은퇴 직후 폭락이 오면 반토막 난 자산에서 계속 같은 금액을 꺼내고, 반대로 시장이 크게 오른 해에도 인출을 늘리지 않아 자산을 잔뜩 남긴 채 생을 마치기도 합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대안이 재무설계사 Jonathan Guyton이 2004년 제시하고 수학자 William Klinger와 2006년에 정교화한 가드레일 규칙입니다. 도로의 가드레일처럼 위아래 한계선을 두는 방식입니다. 자본보존 규칙은 당해 인출률이 초기 인출률보다 20% 넘게 높아지면 인출을 10% 줄이고, 번영 규칙은 인출률이 20% 넘게 낮아지면 인출을 10% 늘립니다. 규칙을 미리 못 박아 두는 대신 처음부터 4%보다 높은 인출률, 대략 4.6~5.6%로 시작할 수 있다고 설명됩니다.
또 다른 방식은 뱅가드의 동적 지출입니다. 매년 자산의 일정 비율을 꺼내되 전년 대비 인출액의 변화 폭에 상한과 하한을 둡니다. 지출률 4%에 상한 +5%, 하한 -2.5%로 잡았다면, 좋은 해에도 인출은 전년보다 최대 5%까지만 오르고 나쁜 해에도 최대 2.5%까지만 줄어듭니다. 2010년 뱅가드 연구에서 이 설정은 고정 4% 인출보다 자산이 바닥날 확률을 낮추는 것으로 보고됐습니다.
대가는 분명합니다. 소득이 해마다 변합니다. 약세장이 길어지면 여러 해 연속 지출을 줄여야 하는데, 주거비·의료비처럼 줄이기 어려운 고정 지출이 많은 사람에게는 현실적으로 힘든 요구입니다. 규칙이 복잡해 매년 점검도 필요합니다. 고정이냐 동적이냐는 우열이 아니라 단순함과 유연성 사이의 선택입니다.
가드레일의 20%·10%, 뱅가드의 +5%·-2.5%는 원 규칙값이자 예시 설정입니다. 개인의 지출 구조에 맞춰 조정할 수 있는 틀로 이해하는 것이 맞습니다.
한국은 상한을 두고, 미국은 하한을 둡니다
세금 혜택을 받으며 모은 계좌에서는 '얼마를 빼도 되는가'에도 규칙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과 미국은 방향이 반대입니다.
한국의 연금저축과 IRP에서 연금으로 받으려면 만 55세 이상, 가입 기간 5년 이상이라는 두 조건을 채워야 합니다. 회사에서 받은 퇴직금이 IRP에 들어온 경우에는 가입 5년을 못 채웠어도 만 55세면 개시가 가능합니다. 두 조건을 채운 해가 연금수령 1년차가 되고, 실제로 돈을 빼지 않아도 연차는 자동으로 올라갑니다.
한국이 두는 것은 최소인출이 아니라 상한입니다. 연금수령한도라고 부릅니다. 공식은 '연금계좌 평가액 ÷ (11 − 연금수령연차) × 120%'입니다. 평가액이 3억 원이고 1년차라면 3억 원 ÷ 10 × 1.2 = 3,600만 원이 그 해 한도입니다. 매년 1월 1일 평가액으로 다시 계산하고, 11년차부터는 분모가 0 이하가 되어 한도가 사실상 풀립니다. 한도 안에서 받으면 대략 3.3~5.5%의 연금소득세가 적용되고, 한도를 넘긴 부분에는 기타소득세나 퇴직소득세처럼 더 무거운 세율이 붙습니다.
미국은 반대로 하한을 둡니다. 전통 IRA와 401(k) 같은 세제 혜택 계좌에서 일정 나이가 되면 최소한 이만큼은 반드시 빼라고 강제하는 RMD입니다. 미국 국세청 안내에 따르면 개시 연령은 73세이고, 첫 RMD는 다음 해 4월 1일까지 미룰 수 있습니다. 정해진 금액을 빼지 않으면 미인출액에 25%의 소비세가 붙고, 2년 안에 시정하면 10%로 낮아집니다. 로스 계좌는 계좌주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인출 의무가 없습니다. SECURE 2.0 법에 따라 이 연령은 2033년부터 75세로 올라갑니다.
정리하면 한국은 '너무 많이 빼지 마라', 미국은 '최소한은 빼라'입니다. 미국이 하한을 두는 이유는 세금을 미뤄준 돈을 언젠가는 인출시켜 과세하기 위해서입니다.
한국 요건과 한도 공식은 국세청·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자료 기준이며 세법 개정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실제 인출 전에 홈택스와 가입 금융기관에서 최신 규정을 확인하세요. 미국 수치는 IRS의 RMD FAQ 페이지에서 직접 확인했습니다.
4%를 기준선으로만 쓰는 이유
4% 법칙의 한계는 숨길 것이 없습니다.
첫째, 대부분 미국 주식·채권의 과거 데이터에서 나온 값입니다. 물가·금리·환율·시장 역사가 다른 나라에 그대로 옮겨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둘째, 세금·매매 수수료·펀드 보수가 빠진 이론값에 가깝습니다. 해외 자산이라면 환율까지 실제 인출 가능액을 갈아냅니다.
셋째, 조기 은퇴처럼 인출 기간이 30년보다 훨씬 길면 표본 밖입니다. 위키백과의 Retirement spend-down 항목은 미국 데이터에서 가장 좋았던 30년 구간에서는 연 10% 인출도 100% 성공했지만 가장 나빴던 30년 구간의 최대 인출률은 3.5%였다고 적습니다. 같은 규칙이 낳는 결과의 폭이 이만큼 넓습니다.
그래서 4%는 정답이 아니라 기준선입니다. 이 숫자를 뒤집으면 목표 자산이 나옵니다. 4%의 역수가 25이므로, 필요한 연 생활비의 25배가 대략적인 목표 금액이 됩니다. 연 4,000만 원이 필요하면 10억 원이 기준선입니다. 다만 이 역산 역시 세금과 수수료를 빼기 전 숫자이므로, 실제 필요액은 더 클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SAFEMAX가 4.15%인데 왜 '4% 규칙'이라고 부르나요?
벤겐이 실무에서 쓰기 쉽도록 4.15%를 4%로 반올림해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4%는 가장 가혹했던 시작 연도조차 30년을 버틴 보수적인 하한선에 해당합니다. 평균적으로 안전했던 인출률은 그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Q. 그럼 지금은 4.7%로 빼 써도 되나요?
벤겐이 더 다변화된 포트폴리오 기준으로 4.7%를 제시한 것은 맞지만, 과거 데이터 기반 추정이지 미래 보장이 아닙니다. 우리 데이터로 SPY에 4% 인출을 적용해도 2000년 3월에 시작한 경우 25년차에 자산이 바닥났습니다. 특정 숫자를 '무조건 안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Q. 매년 자산의 4%씩 빼 쓰는 것과 같은 건가요?
다릅니다. 4% 법칙은 은퇴 첫해 자산의 4%로 생활비를 정하고 이후에는 그 금액을 물가만큼만 올려 쓰는 방식입니다. 매년 남은 자산의 4%를 다시 계산하면 생활비가 시장 등락을 따라 크게 출렁이는 대신 자산이 완전히 마를 위험은 오히려 줄어듭니다. 서로 다른 전략입니다.
Q. 성공확률 95%면 5%는 실패라는 뜻인가요?
과거 데이터 기준으로 100번 중 약 5번은 30년 안에 자산이 바닥났다는 의미입니다. 게다가 1원만 남아도 성공으로 세므로 '성공'한 사례 중에도 자산이 크게 줄어든 경우가 포함됩니다. 확률이 높다고 낙폭이나 손실 기간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Q. 한도를 넘겨 빼면 손해인가요?
무조건 손해라기보다 세율이 올라갑니다. 연금수령한도 안에서 받으면 낮은 연금소득세가 적용되지만 초과분에는 기타소득세나 퇴직소득세 등 더 높은 세율이 붙습니다. 급하게 목돈이 필요하면 초과 인출도 가능하지만 세 부담을 미리 계산해 보는 편이 좋습니다.
Q. 이 글은 특정 인출률을 권하는 건가요?
아닙니다. 이 글은 특정 인출률이나 상품을 권하지 않고 미래 수익을 약속하지도 않습니다. 4% 법칙은 은퇴 자금 규모를 가늠하는 교육용 기준일 뿐이며, 개인의 세금·건강·수명·물가 상황에 따라 적정값은 반드시 달라집니다.
참고자료
- Trinity study — Wikipedia
- William Bengen — Wikipedia
- Retirement plans FAQs regarding required minimum distributions — Internal Revenue Service (IRS)
- Retirement spend-down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