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금리10분 읽기

채권 사다리와 재투자 위험 — 만기를 계단처럼 나누면 무엇이 달라지나

채권은 만기까지 들고 있으면 원금이 돌아오니 금리 방향은 몰라도 된다는 말이 자주 돌아다닙니다. 절반만 맞습니다. 원금은 돌아오지만, 돌아온 그 원금과 중간에 받은 이자를 어떤 이율로 다시 굴릴 수 있을지는 그때 가서야 정해집니다. 이 빈틈의 이름이 재투자 위험이고, 만기를 계단처럼 나누는 채권 사다리는 그 빈틈을 다루려는 오래된 방법입니다.

최근 업데이트: 2026-07-22

원금이 돌아온다는 말이 가리는 것

미국 재무부의 공식 안내(TreasuryDirect)는 재무부 장기채를 만기 20년 또는 30년으로 발행하며 만기까지 6개월마다 고정된 이자를 지급한다고 설명합니다. 만기까지 보유하면 액면가를 돌려받는 것도 맞습니다.

문제는 그사이에 손에 쥐는 현금입니다. 30년물이라면 이자를 60번 받습니다. 그 60번의 돈을 서랍에 넣어두면 복리는 거기서 멈춥니다. 다시 굴려야 복리가 이어지는데, 그때 적용되는 이율은 처음 약속받은 이율이 아니라 그날의 시장 금리입니다.

금리가 내려가 있으면 같은 돈으로 더 적은 이자를 사게 됩니다. 이것이 재투자 위험입니다. 만기 원금도 사정은 같습니다. 돌려받은 원금을 다시 채권에 넣는 순간 투자자는 한 번 더 그날의 금리에 노출됩니다. 즉 채권은 사는 순간 수익이 확정되는 상품이 아니라, 현금흐름이 나올 때마다 조건을 새로 협상당하는 상품에 가깝습니다.

출처: TreasuryDirect(미국 재무부) 국채 안내. 만기·이자 지급 주기는 위 안내를 그대로 옮겼습니다.

사다리 굴리기 — 1,000만원을 10개 단으로

채권 사다리(bond ladder), 또는 래더링은 만기가 서로 다른 채권을 계단처럼 나눠 보유하는 방식입니다. 1,000만원이 있다면 1년물부터 10년물까지 100만원씩 10개의 단(rung)에 나눠 담는 식입니다. 가장 짧은 만기가 맨 아래, 가장 긴 만기가 맨 위에 놓입니다.

1년이 지나면 맨 아래 1년물이 만기가 되어 100만원이 돌아옵니다. 이 돈을 다시 새 10년물, 즉 사다리의 맨 윗단에 넣습니다. 그러면 사다리는 한 칸씩 위로 굴러가며 그대로 유지됩니다. 이것을 사다리 굴리기(rolling)라고 부릅니다.

효과는 단순합니다. 한 시점의 금리에 전 재산을 거는 대신, 매년 조금씩 그때그때의 금리를 사들이게 됩니다. 금리가 오르면 매년 돌아오는 만기 자금이 더 높은 금리로 갈아타고, 금리가 내리면 사다리 위쪽에 남아 있는 장기물이 예전의 높은 이율을 그대로 붙잡고 있습니다. 사다리는 위험을 없애지 않습니다. 위험을 여러 해에 걸쳐 고르게 펴 놓을 뿐입니다.

재투자 위험의 두 얼굴 — 쿠폰과 콜

재투자 위험은 두 갈래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이자(쿠폰) 재투자 위험입니다. 정기적으로 이자를 주는 이표채는 이자를 받을 때마다 다시 투자해야 하는데, 그사이 금리가 내려가 있으면 낮은 이율로 굴려야 합니다.

둘째는 조기상환, 즉 콜 위험입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투자자 안내(Investor.gov)는 콜 위험을 '발행자가 만기 전에 채권을 회수할 가능성이며, 금리가 내려가면 발행자가 그렇게 할 유인이 생긴다'고 설명합니다. 발행자 입장에서는 비싼 이자를 물던 옛 채권을 갚아버리고 싼 이자로 다시 빌리는 편이 이득입니다. 투자자에게는 잘 나오던 고금리 상품이 사라지고 돌려받은 돈을 낮은 금리로 다시 굴려야 하는 상황이 남습니다.

주택담보대출을 미리 갚는 일도 구조가 같습니다. 돈을 빌려준 쪽은 예정보다 일찍 원금을 돌려받고, 낮아진 금리로 재투자해야 하는 자리에 놓입니다. 재투자 위험은 금리가 내릴 때 투자자에게 불리하고, 금리가 오를 때는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방향이 정해진 위험이라는 점이 이 개념의 핵심입니다.

우리 데이터로 잰 두 위험의 크기

말로만 하면 어느 쪽이 더 무거운 위험인지 감이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직접 계산했습니다. 우리가 보관하는 가격 데이터에서 미국 단기 국채 ETF인 SHY와 장기 국채 ETF인 TLT는 둘 다 2002년 7월 30일부터 2026년 8월 31일까지 6,060거래일치가 있습니다.

이 구간에서 SHY의 최대 낙폭은 -5.71%였고, 본전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상승은 +6.1%였습니다. 고점 아래에 머문 가장 긴 구간은 711거래일, 한 해 약 252거래일로 환산하면 약 2.8년입니다.

같은 기간 TLT의 최대 낙폭은 -48.35%입니다. 2020년 8월 4일 고점에서 2023년 10월 19일 저점까지 내려갔고, 2026년 8월 31일까지도 그 고점을 되찾지 못했습니다. 고점 아래에 머문 구간이 1,524거래일, 약 6.1년째 이어지는 중입니다. 되돌리려면 +93.6%가 필요합니다. 중기물인 IEF의 최대 낙폭은 -23.93%로 두 값의 중간이었습니다.

방향이 보입니다. 사다리 아래쪽 짧은 단은 가격이 거의 흔들리지 않는 대신 만기가 자주 돌아와 재투자 위험을 자주 마주합니다. 위쪽 긴 단은 이율을 오래 붙잡아 두는 대신 가격이 크게 흔들립니다. 사다리는 이 두 성질을 한 계좌 안에 섞어 놓은 구조이고, 그래서 어느 한쪽 위험만 피하려는 선택보다 결과가 덜 극단적입니다.

금리가 열 배 벌어진 3년 반

재투자 위험이 추상적으로 들린다면 금리 자체를 보면 됩니다. 우리가 함께 보관하는 매크로 데이터의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2020년 3월 9일 0.499%까지 내려갔다가, 2023년 10월 19일 4.988%까지 올라갔습니다. 같은 원금이 만들어 주는 이자 수입이 3년 반 사이에 약 10배로 벌어진 셈입니다.

2020년에 만기가 돌아온 자금은 0.5% 남짓한 세상에서 다시 굴려야 했고, 2023년에 만기가 돌아온 자금은 5% 가까운 세상에서 굴릴 수 있었습니다. 어느 쪽에 걸리는지는 실력이 아니라 만기가 돌아오는 시점이 정합니다. 그 시점을 여러 해에 흩뿌려 놓는 것이 사다리가 하는 일의 거의 전부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앞에서 본 TLT의 저점 날짜와 이 10년물 금리의 정점 날짜가 2023년 10월 19일로 같습니다. 금리가 오르면 이미 발행된 채권의 가격이 내린다는 교과서 문장이 우리 데이터에서도 같은 날짜에 찍힙니다.

만기수익률(YTM)이 조용히 깔아 두는 가정

채권을 살 때 흔히 보는 지표가 만기수익률(YTM)입니다. 만기까지 들고 있으면 연 몇 퍼센트라는 한 줄의 숫자입니다.

많은 교과서는 이 숫자를 온전히 누리려면 받은 이자를 YTM과 같은 이율로 계속 다시 굴려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YTM이 10%인 채권에서 나온 이자를 나중에 4%로밖에 재투자하지 못하면, 실제로 손에 남는 연평균 수익률은 10%보다 낮아집니다.

다만 학계에는 YTM의 정의 자체에 재투자 가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어 이 부분은 논쟁이 남아 있습니다. 논쟁과 무관하게 확실한 사실은 하나입니다. 이자를 다시 굴릴 때의 이율이 장기 총수익을 크게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표에 적힌 수익률 한 줄만 보고 결과가 확정됐다고 믿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줄이는 방법, 그리고 그래도 남는 것

재투자 위험을 구조적으로 0으로 만드는 대표 사례가 무이표채, 즉 제로쿠폰 채권입니다. 중간에 이자를 주지 않고 만기에 한 번에 몰아 주기 때문에 중간 이자를 다시 굴릴 일 자체가 없습니다. 대신 모든 현금흐름이 만기에 몰려 있어 금리 변동에 따른 가격 흔들림은 오히려 커집니다. 하나를 없애면 다른 하나가 커진다는 원칙이 여기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만기가 짧을수록, 이자가 작을수록 재투자해야 할 금액이 줄어 재투자 위험도 작아집니다. 실전에서는 만기를 나눠 담는 사다리, 그리고 금리 위험과 재투자 위험이 서로 상쇄되도록 만기와 듀레이션을 맞추는 면역화가 함께 쓰입니다.

사다리에도 한계는 분명합니다. 개별 채권을 여러 개 사야 해서 어느 정도 금액이 필요하고 관리에 손이 갑니다. 무엇보다 사다리를 아무리 촘촘히 짜도 발행자가 돈을 갚지 못하는 신용 위험과, 팔고 싶을 때 살 사람이 없는 유동성 위험은 그대로 남습니다. 앞서 인용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안내도 채권의 위험으로 신용·금리·콜·유동성 네 가지를 나란히 적어 두었습니다.

《거의 모든 것의 수익률》은 이 글을 쓰는 사람이 직접 운영하는 사이트입니다. 위의 TLT·SHY 수치처럼 낙폭과 고점 아래에 머문 기간을 가리지 않고 보여주는 것이 이 사이트의 원칙이고, 같은 조건을 거치식·적립식 계산기에서 직접 바꿔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특정 채권이나 만기 구성을 사라고 권하지 않으며, 앞으로 금리가 어떻게 될지도 말하지 않습니다.

세율·제도·금리 환경은 바뀝니다. 위 수치는 2026년 8월 31일까지의 우리 가격 데이터로 계산한 값이며, 실제 채권 매매 전에는 발행 조건과 신용등급을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채권 사다리를 짜면 손실이 안 나나요?

아닙니다. 사다리는 금리 변동의 충격을 여러 해에 걸쳐 평준화할 뿐 손실을 없애 주지 않습니다. 발행자가 부도를 내면 원금을 잃을 수 있고, 중간에 팔아야 하면 금리 상승기에 손실이 납니다. 실제로 우리 데이터에서 장기 국채 ETF인 TLT는 2020년 8월 고점에서 2023년 10월 저점까지 최대 -48.35%를 기록했고 2026년 8월 말까지도 그 고점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Q. 그냥 채권 하나를 오래 들고 있는 것과 뭐가 다른가요?

만기가 하나면 그 시점의 금리 하나에 결과 전부가 걸립니다. 사다리는 만기가 매년 흩어져 있어 좋은 금리와 나쁜 금리를 골고루 섞게 됩니다. 지금이 살 때인지 고민하는 부담이 줄고, 매년 만기 자금이 생겨 필요할 때 현금을 확보하기도 쉬워집니다.

Q. 재투자 위험은 금리가 오를 때도 나쁜가요?

방향이 반대입니다. 금리가 내리면 이자를 낮은 이율로 다시 굴려야 해서 불리하지만, 금리가 오르면 더 높은 이율로 굴릴 수 있어 유리합니다. 재투자 위험은 특히 금리 하락기에 문제가 됩니다. 다만 금리가 오르는 동안에는 이미 보유한 채권의 가격이 떨어지므로, 두 위험이 동시에 좋아지는 국면은 없다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Q. 재투자 위험을 완전히 없앨 수 있나요?

중간 이자가 없는 무이표채를 쓰거나, 현금흐름을 재투자하지 않고 바로 쓸 계획이라면 이 위험은 피할 수 있습니다. 대신 무이표채는 현금흐름이 만기에 몰려 있어 금리 변동에 따른 가격 흔들림이 커집니다. 하나의 위험을 없애면 대개 다른 위험이 커지므로 완전한 무위험은 없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참고자료

#채권#재투자위험#사다리전략#금리#듀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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