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예상손실을 숫자로 — VaR와 조건부 VaR
리먼브러더스가 무너진 2008년 가을, 여러 금융기관의 실제 손실은 자기들이 계산해 둔 VaR 추정치를 크게 넘어섰습니다. 평상시에는 잘 맞던 숫자였습니다. 그 숫자가 왜 하필 필요한 순간에 빗나갔는지가 이 글의 주제입니다.
최근 업데이트: 2026-07-20
VaR을 한 문장으로
VaR(Value at Risk, 최대예상손실)은 정해진 기간 동안, 정해진 확률 안에서 예상되는 최대 손실 금액입니다.
예를 들어 '내 포트폴리오의 95% 신뢰수준 1개월 VaR은 100만원'이라고 말했다면 이런 뜻입니다. 다음 한 달 동안 100번 중 95번은 손실이 100만원을 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100번 중 5번은 100만원보다 더 잃을 수도 있다.
VaR에는 항상 세 가지가 들어갑니다. 기간(하루인지 한 달인지), 신뢰수준(95%인지 99%인지), 손실 금액입니다. 이 셋이 다 있어야 제대로 된 VaR입니다.
기간을 하루로 바꿔도 구조는 같습니다. 95% 신뢰수준 1일 VaR이 100만원이라면, 20일 중 19일은 손실이 100만원 안쪽이라는 뜻입니다.
오해를 하나 정리해 두겠습니다. VaR은 '최대 손실'이 아니라 '어지간해서는 넘지 않는 손실선'입니다. 나머지 5% 구간에서는 이 금액을 훌쩍 넘을 수 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세 가지 계산법
VaR을 구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이고, 각자 장단점이 뚜렷합니다.
첫째, 파라메트릭(분산-공분산) 방법입니다. 수익률이 정규분포를 따른다고 가정하고 변동성에 신뢰계수를 곱합니다. 간단한 근사식은 'VaR ≈ 투자금 × 변동성 × 신뢰계수'입니다. 95%면 신뢰계수(z값)가 약 1.65, 99%면 약 2.33을 씁니다. 빠르고 간단하지만, 실제 시장은 종 모양보다 꼬리가 두꺼워 극단적 손실을 과소평가하는 약점이 있습니다.
둘째, 역사적 시뮬레이션입니다. 분포를 가정하지 않고 과거 실제 수익률을 나쁜 순서대로 줄 세운 다음 하위 5% 지점을 VaR로 삼습니다. 예를 들어 10년 치 일간 수익률을 정렬해 아래에서 5% 위치의 값을 읽는 식입니다. 직관적이지만 '과거가 미래를 대표한다'는 가정에 의존합니다.
셋째,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입니다. 컴퓨터로 수천에서 수만 개의 가상 시나리오를 만들어 손실 분포를 추정합니다. 가장 유연하지만 계산이 복잡하고 어떤 모델을 쓰느냐에 결과가 크게 좌우됩니다.
우리 데이터로 직접 계산해 보면
말로만 들으면 세 방법의 차이가 잘 와닿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미국 대형주 ETF(SPY) 조정 종가로 직접 계산했습니다. 1993년 2월부터 2026년 8월까지 8,453거래일의 일간 수익률이 재료입니다.
이 기간의 일간 표준편차는 1.17%입니다.
95% 신뢰수준 1일 VaR을 구하면, 역사적 방법으로는 -1.80%가 나옵니다. 정규분포를 가정한 파라메트릭 방법으로는 -1.92%입니다. 두 값의 차이는 0.12%포인트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99%로 올리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역사적 방법은 -3.20%인데 파라메트릭 방법은 -2.72%입니다. 정규분포 가정이 실제보다 0.48%포인트 얕게 잡은 것입니다.
'95% 수준에서는 세 방법의 결과가 비슷한데 극단으로 갈수록 벌어진다'는 교과서 서술이, 우리 데이터에서 그대로 확인됩니다. 그리고 그 방향이 중요합니다. 정규분포 가정은 극단에서 위험을 낮게 잡습니다. 안전한 쪽이 아니라 위험한 쪽으로 틀립니다.
금액으로 옮겨보면 감이 더 잡힙니다. 1,000만원을 넣었다면 95% 1일 VaR은 약 18만원, 99% 1일 VaR은 약 32만원입니다.
(계산 근거: data/raw/us_stocks/SPY.csv, 1993-01-29~2026-08-31 조정 종가의 일간 단순수익률.)
VaR이 답하지 못하는 질문
VaR은 편리해서 은행과 펀드가 널리 썼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선을 넘었을 때 얼마나 심각한지를 전혀 말해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VaR은 손실이 100만원을 넘을 확률이 5%라고만 알려줄 뿐, 그 5%가 터졌을 때 101만원을 잃을지 200만원을 잃을지 2,000만원을 잃을지는 침묵합니다. 이것을 꼬리위험을 못 잡는다고 표현합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이 약점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많은 금융기관의 실제 손실이 자기들이 계산해둔 추정치를 크게 초과했습니다. 평상시에는 잘 맞던 숫자가 정작 위기의 순간에는 안전지대를 훨씬 벗어난 손실을 막아주지 못한 것입니다.
또 하나, VaR은 이론적으로 하위가법성을 위반할 수 있습니다. 자산을 나눠 담는 분산투자가 오히려 위험을 키우는 것처럼 잘못 계산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조건부 VaR — 문턱 너머의 평균 깊이
그 빈틈을 메우는 지표가 조건부 VaR(Conditional VaR, CVaR)입니다. 기대손실(Expected Shortfall, ES)이라고도 부릅니다.
정의는 '손실이 VaR 선을 넘었을 때, 그 손실들의 평균'입니다. VaR이 문턱의 높이라면, CVaR은 문턱을 넘어간 물이 평균 얼마나 깊은가입니다. 정의상 CVaR은 항상 같은 신뢰수준의 VaR보다 크거나 같습니다.
앞서 쓴 같은 데이터로 계산해 보면 이렇습니다. 95% CVaR은 -2.78%로, 같은 신뢰수준 VaR인 -1.80%보다 0.98%포인트 깊습니다. 99% CVaR은 -4.66%로, 99% VaR인 -3.20%보다 1.46%포인트 깊습니다.
숫자 하나를 더 붙이면 체감이 달라집니다. 이 기간 최악의 하루는 2020년 3월 16일의 -10.94%였습니다. 99% VaR -3.20%의 약 3.4배입니다. 1,000만원 기준으로 99% VaR은 약 32만원인데 그날 하루의 손실은 약 109만원이었다는 뜻입니다.
'문턱까지'만 아는 것과 '문턱 너머의 평균 깊이'까지 아는 것은 다른 준비를 낳습니다. 그리고 최악의 하루는 그 평균보다도 훨씬 깊습니다.
규제가 VaR에서 ES로 옮겨간 이유
이 차이를 규제 당국도 인정했습니다. 바젤은행감독위원회는 시장위험 자본 규제를 개편하면서 '위험 척도를 VaR에서 스트레스 상황의 기대손실(ES)로 전환한다'를 핵심 변경 사항으로 명시했습니다. 흔히 인용되는 형태는 기존 99% VaR을 97.5% 기대손실로 바꿨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VaR은 꼬리의 심각성을 무시하는데 ES는 그것을 반영합니다. 둘째, ES는 여러 자산을 합쳤을 때 위험이 부풀지 않는 하위가법성을 갖습니다. VaR은 이 성질이 깨질 수 있습니다.
수익률에 팻테일이 있으면 97.5% CVaR이 99% VaR보다 커질 수 있습니다. 극단 손실이 실제로 얼마나 깊은지는 CVaR이 더 잘 드러냅니다.
개인 투자자가 가져갈 것
개인이 매일 VaR을 직접 계산할 일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 지표가 주는 사고방식은 그대로 쓸 수 있습니다.
첫째, 위험을 확률과 금액으로 구체화하는 습관입니다. '그냥 위험해'가 아니라 '한 달에 얼마까지 잃어도 내가 버틸 수 있나'를 스스로 묻는 것입니다.
둘째, 어떤 위험 지표든 평상시와 위기는 다르다는 점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95% 구간이 아무리 예뻐 보여도 진짜 무서운 것은 나머지 5%입니다.
셋째, 장기 투자에서는 하루짜리 손실선보다 최대 낙폭과 회복 기간이 더 실질적인 질문입니다. VaR은 하루나 한 달의 손실을 말하지만, 장기 투자자를 무너뜨리는 것은 몇 년에 걸친 물속 구간입니다.
이 서비스가 수익률만이 아니라 최대 낙폭과 손실 기간을 함께 보여주는 이유도 같습니다. 평상시 숫자만 믿고 위기 시나리오를 못 본 척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VaR이 100만원이면 손실이 절대 100만원을 안 넘는 건가요?
아닙니다. 95% 신뢰수준이라면 100번 중 약 5번은 100만원을 넘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VaR은 절대 상한선이 아니라 어지간해서는 넘지 않는 선일 뿐이고, 그 선을 넘었을 때 얼마나 크게 잃을지는 VaR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Q. 신뢰수준 95%와 99% 중 뭐가 더 안전한 숫자인가요?
신뢰수준이 높을수록 더 드문 극단 상황까지 포함하므로 VaR 금액 자체는 커집니다. 95%는 z값 약 1.65, 99%는 약 2.33을 쓰기 때문입니다. 더 안전하다기보다 더 보수적으로 본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다만 신뢰수준을 아무리 높여도 그 바깥의 초극단 손실은 여전히 잡히지 않습니다.
Q. 2008년 금융위기 때 VaR은 왜 무용지물이었나요?
VaR은 대체로 평상시 데이터로 계산돼, 시장 구조 자체가 무너지는 상황을 잘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실제 손실이 추정치를 크게 초과했고, 이 경험이 꼬리위험을 더 잘 잡는 기대손실로 규제가 옮겨가는 계기가 됐습니다.
Q. CVaR과 ES는 다른 지표인가요?
실무에서는 거의 같은 뜻으로 씁니다. 조건부 VaR(CVaR), 기대손실(Expected Shortfall), 평균초과손실 모두 VaR을 넘는 손실의 평균을 가리킵니다. 분포가 연속이면 정확히 같고, 엄밀한 학술 정의에서만 미세한 차이가 있습니다.
Q. 개인 투자자에게도 쓸모가 있나요?
직접 숫자를 구하긴 어렵지만 관점은 유용합니다. 나쁜 일이 일어날 확률만 보지 말고 그 나쁜 일이 터지면 평균 얼마나 아플지를 함께 상상하는 습관이 CVaR의 사고입니다. 최대 낙폭이나 과거 위기 사례를 미리 살펴보는 것이 그 연습이 됩니다.
참고자료
- Minimum capital requirements for market risk (January 2016) — Basel Committee on Banking Supervision,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 Minimum capital requirements for market risk (January 2019) — Basel Committee on Banking Supervision,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