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일본 시장 — 선진국인데 미국과 다른 이유
2,782거래일. 우리 데이터로 계산하면 일본 시장에 투자하는 ETF(EWJ)가 한 번의 고점 아래에서 머문 가장 긴 기간입니다. 11년이 넘도록 계좌는 전고점을 보지 못했습니다. 유럽과 일본은 분명 선진국인데 왜 미국과 다른 그림이 나오는지, 숫자에서 시작해 구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최근 업데이트: 2026-07-23
숫자 몇 개로 본 선진국 시장의 낙폭
선진국이라는 말은 안정을 연상시킵니다. 우리 가격 데이터로 계산해 보면 그 연상이 얼마나 느슨한지 드러납니다.
일본 시장에 투자하는 EWJ는 2000년 3월 31일 고점에서 2003년 4월 25일 저점까지 -58.89% 하락했습니다. 전고점을 되찾은 날은 2006년 5월 2일로, 저점에서 36.2개월이 걸렸습니다. 고점 아래에 머문 최장 기간이 앞에서 말한 2,782거래일입니다. 1996년 3월 18일부터 2026년 8월 31일까지 30년 5개월 동안의 누적 상승은 +149.3%, 연평균 +3.05%입니다.
유럽 시장에 투자하는 VGK는 2007년 10월 31일 고점에서 2009년 3월 9일 저점까지 -63.61% 빠졌습니다. 회복은 2014년 4월 9일, 저점에서 61.0개월 뒤였습니다. 고점 아래 최장 구간은 1,619거래일이고, 2005년 3월 10일부터의 누적 상승은 +289.7%, 연평균 +6.54%입니다.
나라별로도 결이 다릅니다. 독일 ETF(EWG)의 최대 낙폭은 -67.57%로 2000년 2월 23일부터 2003년 3월 12일 사이였고, 영국 ETF(EWU)는 -63.99%로 2007년 10월 31일부터 2009년 3월 9일 사이였습니다. 독일은 닷컴 붕괴에서, 영국은 금융위기에서 가장 크게 빠진 것입니다. 같은 유럽이라도 무엇에 취약한지가 다릅니다.
위 ETF들은 미국에 상장돼 달러로 거래되므로, 수치에는 현지 통화 대비 달러 환율의 움직임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한국 투자자라면 여기에 원-달러 환율이 한 겹 더 붙습니다. 일별 종가 기준이며 분배금 재투자·세금·수수료는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기준일은 2026-08-31입니다.
유럽은 나라가 여럿이라 거래소도 여럿이다
유럽은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여러 나라의 모임이라 시장 구조가 조금 복잡합니다. 독일·프랑스·영국·네덜란드·이탈리아 등 각 나라마다 거래소가 있습니다.
그중 가장 큰 거래소는 유로넥스트(Euronext)입니다. 유로넥스트는 파리·암스테르담·브뤼셀·리스본·더블린·밀라노·오슬로 등 여러 나라의 거래소를 묶은 범유럽 거래소로, 2024년 9월 기준 시가총액이 약 5.7조 달러, 상장사가 1,200곳이 넘는 유럽 최대 규모입니다.
영국의 런던증권거래소,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거래소 등도 중요한 시장입니다.
거래소 규모는 집계 기준과 시점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유로넥스트 자체 발표로는 2024년 12월 30일 기준으로 7개국 시장에 1,800곳이 넘는 발행사와 약 6조 유로의 시가총액을 갖고 있습니다. 통화 단위와 집계 대상이 다르면 같은 거래소도 다른 숫자로 표현됩니다.
범유럽 지수와 나라별 지수
유럽 시장을 볼 때 쓰는 지수는 범유럽과 나라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범유럽 지수로는 두 가지가 대표적입니다. STOXX600은 유럽 17개 나라의 600개 기업을 담아 유럽 시장의 약 90%를 커버하므로, 유럽 전체를 볼 때 가장 널리 쓰입니다. 유로스톡스50은 유로존(유로화 사용국)의 대형 우량주 50곳을 담은 블루칩 지수입니다.
나라별 지수로는 독일 대표 40개 기업을 담는 DAX, 영국 런던 상장 대형주 100곳을 담는 FTSE100, 프랑스 대표 40개 기업을 담는 CAC40이 있습니다.
유럽 전체를 보고 싶다면 STOXX600, 특정 나라를 보고 싶다면 그 나라 지수를 보면 됩니다. 앞에서 독일과 영국의 최대 낙폭 시기가 서로 달랐던 것처럼, 어느 지수를 보느냐에 따라 '유럽이 언제 힘들었는가'의 답이 달라집니다.
유럽 시장의 세 가지 특징
첫째, 성숙한 선진 시장이라 배당을 꾸준히 주는 대형 기업이 많습니다. 명품·제약·에너지·금융 같은 전통 강자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둘째, 미국에 비해 대형 기술주 비중이 작은 편입니다. 그래서 미국 시장과는 오르내림의 결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기술주 주도장에서는 뒤처지고, 기술주가 무너질 때는 덜 빠지는 식입니다.
셋째, 여러 나라가 얽혀 있어 통화(유로화·파운드 등)와 나라별 정치·경제 상황의 영향을 받습니다. 한국에서 투자하면 환율 변수가 더해집니다.
정리하면 유럽은 여러 선진국이 모인 성숙 시장이라, 미국과 다른 성격의 분산 대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앞의 수치가 보여주듯 '다른 성격'이 '작은 낙폭'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2008년에는 미국과 유럽이 함께 무너졌습니다.
1989년 12월 29일, 그리고 34년
일본은 오랜 손실 기간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 교과서적 사례입니다.
일본의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는 1989년 12월 29일 사상 최고치인 38,915.87을 기록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버블 경제의 절정이었고,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습니다.
그 직후 버블이 꺼지면서 주가가 폭락했고, 일본 증시는 오랫동안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닛케이225가 1989년 고점을 다시 넘어선 것은 2024년 2월입니다. 약 34년이 걸린 것입니다.
이 기간을 흔히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부릅니다. 지수가 고점을 회복하는 데만 한 세대가 걸린 셈입니다.
참고로 TOPIX의 사상 최고 종가는 며칠 앞선 1989년 12월 18일의 2,884.80입니다(그달 29일 종가는 2,881.37이었습니다). 두 지수 모두 버블 절정에서 정점을 찍고 오래 부진했습니다.
34년은 명목 지수 기준입니다. 배당을 재투자했다면 회복 시점이 조금 더 빨랐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래도 매우 긴 손실·정체 기간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닛케이225와 TOPIX는 무엇이 다른가
일본 시장을 볼 때 자주 나오는 지수가 두 개입니다.
닛케이225는 일본을 대표하는 225개 기업을 담는데, 가격 가중 방식입니다. 미국 다우존스처럼 주가가 비싼 종목의 영향이 큽니다.
TOPIX(도쿄주가지수)는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폭넓은 종목을 시가총액 가중으로 담습니다. 시장 전체를 더 대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 다 1989년 12월에 정점을 찍었지만 방식이 다르니 이후 궤적도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일본 증시가 최고점을 회복했다'는 뉴스가 어느 지수 이야기인지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 역사가 주는 교훈
일본의 경험은 두 가지를 알려줍니다.
첫째, '지수는 언젠가 반드시 전고점을 회복한다'는 믿음이 항상 빠르게 실현되지는 않습니다. 나라와 시기에 따라 회복에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특히 버블 절정에서 비싸게 사면 회복까지 오래 견뎌야 할 수 있습니다.
둘째, 그래서 분산이 중요합니다. 한 나라, 한 시장에만 몰아넣었다면 일본 투자자는 30년 넘게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여러 나라와 자산에 나눠 담았다면 충격이 덜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일본을 비관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시장이든 오랜 손실 기간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숨기지 말자는 이야기입니다. 최근 일본 증시가 최고점을 넘어선 것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그 이면의 긴 침묵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데이터가 보여주지 못하는 것
앞에서 인용한 EWJ의 -58.89%와 2,782거래일은 1996년 3월 이후의 기록입니다. 1989년 고점에서 시작된 하락의 대부분은 그 이전에 이미 지나간 뒤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데이터에 담긴 일본의 낙폭은 실제 역사의 일부일 뿐이고, 진짜 최악의 구간은 계산 범위 밖에 있습니다.
이 한계를 밝히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데이터의 시작일을 언제로 잡느냐에 따라 같은 자산의 '최대 낙폭'과 '연평균 수익률'이 전혀 다르게 나옵니다. 1996년부터 계산한 일본의 연평균 +3.05%는 1989년부터 계산했다면 훨씬 낮았을 것입니다.
어떤 자산의 과거 성적을 볼 때는 숫자 자체보다 그 숫자가 어느 구간에서 나왔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시작점을 고르는 순간 결론의 절반은 이미 정해집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유럽 전체에 투자하려면 어떤 지수를 봐야 하나요?
가장 폭넓은 것은 17개국 600개 기업을 담는 STOXX600입니다. 유로존 대형주만 보고 싶으면 유로스톡스50, 특정 나라를 보고 싶으면 DAX(독일)·CAC40(프랑스)·FTSE100(영국)처럼 나라별 지수를 보면 됩니다. 다만 특정 지수를 사라는 뜻은 아닙니다.
Q. 영국은 유럽인데 왜 유로화를 쓰지 않나요?
영국은 EU를 탈퇴(브렉시트)했고, 애초에 EU 회원일 때도 유로화 대신 파운드를 썼습니다. 그래서 FTSE100은 파운드 기반입니다. 유럽 안에서도 나라마다 통화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알아두면 환율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Q. 일본처럼 한 시장이 30년 넘게 부진할 수도 있나요?
역사적으로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그래서 '주가는 시간이 지나면 무조건 회복한다'는 말을 특정 한 나라에 그대로 적용하면 위험합니다. 여러 나라와 자산에 분산하고, 오래 견딜 수 있는 자금으로 투자하는 것이 이런 위험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Q. 닛케이225와 TOPIX 중 무엇을 보는 게 맞나요?
목적에 따라 다릅니다. 뉴스에 자주 나오고 상징적인 것은 닛케이225지만, 시장 전체를 더 고르게 대표하는 것은 시가총액 가중인 TOPIX입니다. 둘 다 보면 일본 시장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Q. 선진국 시장이면 낙폭이 작지 않나요?
우리 데이터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유럽 ETF는 -63.61%, 일본 ETF는 -58.89%, 독일 ETF는 -67.57%까지 빠졌습니다. 선진국이라는 분류는 시장 제도와 접근성이 성숙했다는 뜻이지 하락 폭이 작다는 뜻이 아닙니다.
참고자료
- Euronext confirms its European leading position in equity listing (2024 full-year figures) — Euronext
- Nikkei Index Sets First Record High Since 1989 — Nippon.com (Nippon Communications Foundation)
- MSCI Market Classification — MSC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