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업데이트: 2026-08-14
대공황 대폭락
다우존스가 고점 381.17에서 41.22까지 -89.2% 폭락. 고점을 되찾는 데 25년이 걸렸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
1920년대 미국 증시는 "영원한 번영"이라는 말이 통용될 만큼 뜨거웠습니다. 증거금 10%만 내고 주식을 사는 신용거래가 일반화됐고, 주가가 오르는 한 그 구조는 문제없이 굴러갔습니다.
1929년 9월 3일 다우존스는 381.17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10월 24일 검은 목요일, 10월 29일 검은 화요일을 지나며 붕괴가 시작됐습니다. 다만 이 폭락은 며칠로 끝난 사건이 아닙니다. 다우존스가 최종 저점 41.22를 기록한 것은 그로부터 2년 9개월 뒤인 1932년 7월 8일이었습니다. 고점 대비 -89.2%입니다.
무너진 것은 주가만이 아니었습니다. 은행 약 9,000곳이 문을 닫았고 실업률은 25%까지 올랐습니다. 스무트-홀리 관세법으로 각국이 보호무역에 나서면서 세계 교역이 급감했고, 연준은 오히려 통화를 조인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다우존스가 1929년 고점을 회복한 것은 1954년 11월 23일 — 25년이 걸렸습니다.
자산별 영향
| 자산 | 고점 대비 낙폭 | 하락 기간 | 회복 |
|---|---|---|---|
| 다우존스 산업평균 | -89.2% | 34개월 (1929-09-03 → 1932-07-08) | 1954년 11월 23일 고점 회복. 명목 기준 약 25년. |
| S&P 전신 지수 | -86% | 약 34개월 | 다우와 비슷한 궤적. 회복에 20년 이상 소요. |
| 실물 경제 (실업률) | 실업률 25%까지 상승 | 1929 → 1933 | 주가보다 먼저 바닥을 치고 회복했으나 완전 정상화는 2차 대전 이후. |
| 은행 시스템 | 약 9,000개 은행 파산 | 1930 → 1933 | 예금보험(FDIC) 도입의 계기. 이후 같은 규모의 연쇄 파산은 재현되지 않았습니다. |
이 사건이 남긴 교훈
- 1이 사건이 남긴 가장 중요한 숫자는 -89.2%가 아니라 25년입니다. 낙폭보다 무서운 것은 회복하지 못한 채 흘러가는 시간입니다.
- 2-89.2%에서 본전을 회복하려면 +826%가 필요합니다. 낙폭이 깊어질수록 필요한 상승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집니다.
- 3증거금 10%의 신용거래가 하락을 증폭시켰습니다. 빌린 돈으로 산 자산은 가격이 내릴 때 버틸 선택지를 빼앗습니다.
- 4정책 대응이 위기를 키울 수도 있습니다. 보호무역과 통화 긴축은 당시에는 합리적으로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공황을 길게 만들었습니다.
- 5오늘날의 예금보험·서킷브레이커·중앙은행 최종대부자 기능은 대부분 이 사건 이후에 만들어졌습니다. 제도는 과거의 실패로 만들어집니다.
그때 샀다면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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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대공황 같은 폭락이 다시 올 수 있나요?
가능성을 0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당시를 악화시킨 요인 중 상당수(예금보험 부재, 연쇄 은행 파산, 통화 긴축 대응, 서킷브레이커 부재)는 이후 제도적으로 보완됐습니다. 그렇다고 -50%대 하락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2000년 닷컴(-49%)과 2008년 금융위기(-56.8%)가 그 뒤에도 있었습니다.
Q. 25년이면 사실상 평생 아닌가요?
명목 주가 기준으로는 그렇습니다. 다만 이 25년 수치는 배당을 제외한 지수 가격만 본 것이고, 그 사이에도 배당은 지급됐습니다. 또한 하락기에 계속 매수한 사람과 고점에서 한 번에 사고 멈춘 사람의 결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 사이트의 적립식 계산기로 두 경우를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 데이터 출처: 가격 데이터 출처: Federal Reserve History, S&P Dow Jones Indices. 다우존스 고점 381.17(1929-09-03)·저점 41.22(1932-07-08)·고점 회복 1954-11-23은 공개 자료로 교차 확인했습니다. 지수는 배당을 제외한 가격 기준이며, 당시에는 개인이 직접 투자할 수 있는 지수 상품이 없었습니다. 과거 성과가 미래 수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